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 탐색
"책은 우리 안에 꽁꽁 얼어붙어 있는 바다를 깨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
프란츠 카프카의 이 문장으로부터 제목을 따온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는 단순한 독서 안내서가 아니다. 그것은 광고인이자 크리에이터로서 20여 년간 수많은 책들과 교감하며 삶을 변화시켜 온 한 사람의 진솔한 독서 편력기이자, 현대 사회에서 '왜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광고인이 들려주는 인문학의 힘
2011년 처음 출간된 이 책은 이례적인 현상을 만들어냈다. 광고인이 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뿐 아니라, 당시 침체되어 있던 인문학 열풍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박웅현은 제일기획과 TBWA 코리아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며 '썬키스트 레몬에서 레몬을 빼면', '오늘의 커피는 누가 내려드릴까요?', '참이슬, 오늘 한 병 어때요?' 같은 인상적인 카피를 만들어낸 광고계의 거장이다.
그런 그가 인문학, 특히 고전 작품들에 담긴 지혜를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그것을 자신의 창작 세계와 연결시키는 과정은 많은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8인의 작가, 8가지 사유의 길
'책은 도끼다'는 박웅현이 깊이 영향받은 8명의 작가와 그들의 작품을 통해 구성된다. 프란츠 카프카, 미셸 푸코, 알베르 카뮈, 움베르토 에코, 롤랑 바르트, 빌렘 플루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 그리고 단테. 그는 이 작가들을 "내가 아끼는 작가"라고 부르며, 그들과의 지적 교감을 통해 자신이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이 단순히 명저 요약이나 작가 소개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웅현은 각 작가의 핵심 문장이나 생각을 자신의 일상과 직업 경험에 연결시킨다. 카프카의 문학을 통해 광고의 본질을, 푸코의 파놉티콘을 통해 현대 소비사회의 감시 메커니즘을, 카뮈의 부조리를 통해 창작의 역설을 읽어낸다.
'홀로 있되 고독하지 않게'
박웅현이 책에서 강조하는 독서의 태도는 '홀로 있되 고독하지 않게'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그에게 독서는 혼자 하는 행위이지만, 결코 고립된 행위가 아니다. 책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한 위대한 정신들과 대화하는 과정이며, 그 대화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우는 과정이다.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의 가장 뛰어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언을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실천한다. 그리고 그 대화의 결과물을 다시 자신의 창작물로 승화시킨다.
광고와 인문학, 생각보다 가까운 두 세계
일견 상업적인 광고 세계와 학문적인 인문학 세계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박웅현은 이 두 세계가 생각보다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에게 광고는 단순한 상품 판매의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 희망과 절망을 다루는 커뮤니케이션의 예술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기호학, 롤랑 바르트의 신화론, 빌렘 플루서의 미디어 철학은 그에게 광고를 만드는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동시에 카프카와 카뮈, 릴케의 문학은 인간 실존의 본질적 문제에 대한 통찰을 제공함으로써 메시지의 깊이를 더했다.
그는 말한다. "좋은 광고인은 인간을 이해해야 하고,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길은 인문학에 있다."
'버티컬 리딩'과 '호리즌탈 리딩'
박웅현이 제안하는 독서법 중 주목할 만한 것은 '버티컬 리딩'(vertical reading)과 '호리즌탈 리딩'(horizontal reading)의 개념이다. 버티컬 리딩은 한 작가의 작품을 깊이 파고드는 독서법이고, 호리즌탈 리딩은 다양한 분야의 책을 넓게 읽는 방식이다.
그는 두 방식의 균형을 강조하면서, 특히 한 작가에 빠져들어 그의 세계관을 깊이 이해하는 버티컬 리딩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그에게 카프카, 카뮈, 릴케는 버티컬 리딩의 대상이었다. 그들의 삶과 작품, 사상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 관련 서적들을 탐독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해석과 적용 방식을 발견했다.
'적용'의 중요성
'책은 도끼다'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박웅현이 독서에서 얻은 통찰을 실제 자신의 삶과 직업에 '적용'하는 모습이다. 그에게 독서는 지적 유희나 교양 쌓기가 아니라, 실천적 지혜를 얻는 과정이다.
카프카의 "성급하게 읽지 말고, 자기 자신을 불안하게 하지 말고, 직접 텍스트에서 어떤 것도 기대하지 말라"는 조언은 그의 광고 제작 과정에 반영되었다. 릴케의 "너의 일상적인 삶의 대상들을 표현하려고 노력하라"는 가르침은 그의 카피라이팅 철학이 되었다.
이러한 '적용'의 방식은 독자들에게도 큰 영감을 주었다. 고전 작품이 먼지 쌓인 책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
'책은 도끼다'가 출간된 지 10년이 넘은 지금, 그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오히려 디지털 정보의 홍수 속에서 깊이 있는 사유와 성찰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소셜미디어와 쇼트 콘텐츠의 시대에 한 권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행위는 그 자체로 저항이 된다.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정보에 의존하는 대신, 능동적으로 지식을 탐색하고 자신만의 관점을 형성하는 과정은 참된 자유를 향한 여정이다.
박웅현이 인용한 카프카의 말처럼,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가 될 수 있다. 그 도끼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는 독자 각자의 몫이다.
나만의 도끼 찾기
'책은 도끼다'의 가장 큰 미덕은 박웅현이 자신의 독서 경험을 진솔하게 공유하면서도, 독자들에게 "나만의 도끼를 찾으라"고 권유한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작가들을 소개하지만,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같은 의미를 가질 수는 없음을 안다.
중요한 것은 책과 진지하게 마주하는 태도, 그리고 그 경험을 자신의 삶에 녹여내는 과정이다. 누군가에게는 카프카가, 다른 이에게는 셰익스피어가, 또 다른 이에게는 윤동주가 '도끼'가 될 수 있다.
박웅현은 말한다. "독서의 궁극적인 목적은 타인의 생각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발견된 생각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고, 그 세계를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 그것이 '책은 도끼다'가 우리에게 전하는 궁극적인 메시지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도끼를 든 당신에게
'책은 도끼다'는 단순한 독서 안내서나 인문학 에세이를 넘어, 현대 사회에서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초대장과도 같다. 그것은 지식과 정보를 넘어 지혜를 추구하는 여정,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본질을 찾아가는 여정에 대한 초대다.
박웅현이 자신의 광고 작업과 독서 경험을 연결시키듯, 우리 각자도 자신의 일상과 직업, 관계 속에서 책을 통해 얻은 통찰을 적용하고 실험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책이 도끼가 되는 순간이다.
당신의 내면에 얼어붙은 바다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바다를 깨기 위해 어떤 도끼가 필요한가?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는 그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여정의 든든한 동반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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